모테기 도시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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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55대 자유민주당 간사장.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 고노 다로 디지털대신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주자로 거론되고 있다.[2]
2. 상세[편집]
1955년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5대 종합상사인 마루베니(丸紅)에 입사해 3년간 근무하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로 유학해 1983년 정책학 석사(MPP, Master in Public Policy)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정계에 같은 케네디스쿨 출신으로 하야시 요시마사 전 문부과학대신과 고바야시 다카유키 현 경제안보담당대신, 미야자와 요이치 자민당 세제조사회장,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 등이 있다. 귀국 후 요미우리 신문에 잠시 몸담았다가 전략컨설팅사인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9년간 근무하던 중 맥킨지 & 컴퍼니의 일본 지사장 겸 아시아 태평양 지구 회장이었던 오마에 겐이치(大前 硏一)[3] 가 세운 '헤이세이 유신회'에 입당해 사무국장을 맡았다.[4]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신당의 공천을 받아 옛 도치기 2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95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해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치기현 제5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같은 지역구에서 8연속 당선되어 9선 중의원이 되었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을 역임하다가 2003년 국무대신(오키나와 및 북방영토, 개인정보보호, 과학기술정책, IT담당)을 역임했다. 2007년에는 북일 수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모임에 참여했으며, 2008년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금융, 행정개혁담당)을 맡았다. 2011년 9월에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1년 뒤인 2012년 9월에는 자민당 일본경제재생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그 후 자민당이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통해 다시 정권을 되찾은 뒤에는 아베 신조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 및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원자력 손해배상 지원기구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경제재생담당 국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경제재정정책 담당)을 역임중에 2019년 9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 낸 공적으로 외무대신에 임명되었다.
2.1. 외무대신 시절[편집]
모테기 외무상이 미국 서부 현지시간으로 1월 14일, 우리 시간으로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태평양 전쟁 시 조선인 노무동원 문제와 관련해 ‘한국측의 책임’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외무성이 15일 공개한 ‘모테기 외무대신 임시 회견 기록’에 따르면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테기 외무상은 이날 강경화 외무부장관과의 회담에서 강 장관에게 “구(舊)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를 필두로 한 제(諸) 현안에 대해 의견교환을 나누고 (해당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의 책임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1월 20일 제201차 정기국회(중·참의원)에서 행한 외교연설에서 모테기 외무상은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본적 입장을 토대로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모테기 외무대신의 주장은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놓고 대립해온 한일 양국이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갈등을 키울 불씨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왕 국무위원은 21일 모테기 외무상과 통화에서 이웃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어려움을 함께 해왔다면서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왕이 국무위원은 "중국은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투명하며 책임 있는 태도로 적시에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에 코로나19 정보를 통보했다"면서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을 공유하고 중국의 경험을 아낌없이 소개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국제사회가 단결해 전염병을 퇴치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양국 간 방제 협력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달 30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임상 연구 등을 위해 아비간을 요청한 나라가 약 80개국에 달했다고 말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각국 외교장관과 전화 회담을 하고 있는데 아비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대단히 높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은 이날 신형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개발한 아비간을 각국으로 번진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각국에 이같이 공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후지필름 자회사 후지필름 도야마화학이 개발한 아비간은 중국 등에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일본 정부는 희망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언명했다. 모테기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그간 80개국 가까이 아비간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중 43개국에 국제기관을 통해 순차적으로 발송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스가 내각에서 유임되어 자리를 지켰으며, 그 후임인 기시다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2021년 10월 5일 유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주장할 것은 확실히 주장하고, 문제를 관리하면서 안정적인 관계 구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021년 10월에 열린 총선에서 공산당 후보밖에 상대가 없어 3배가 넘는 차이로 압승해 중의원 10선 고지에 올랐다. 이후 지역구에서 낙선한 아마리 아키라의 뒤를 이어 당 간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2019년 이후 2년만에 외무대신 자리에서 내려왔다.
2.2. 간사장 임명[편집]
제49회 총선에서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간사장이 55년 체제 이래 첫 현직 자민당 간사장(사무총장) 지역구 낙선이란 대망신을 당하여[5] 총선 다음날인 11월 1일 간사장직을 사임하였고, 이에 기시다 후미오 총재가 후임 간사장으로 모테기를 지명하여 외무대신직을 사임하였다. 모테기 외무대신이 출장에서 귀국하고 나서 11월 4일 목요일 총무회 의결로 최종 결정되었으며, 모테기 외무대신 퇴임 후 기시다 총리가 재지명받고 제2차 기시다 내각을 결성하는 11월 10일까지는 임시로 기시다 총리가 외무대신을 겸임했다.
11월 4일, 정식으로 당 간사장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첫번째 시험대는 내년에 있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가 될 예정.#
11월 11일, 파벌 회의를 통해 헤이세이 연구회의 차기 회장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헤이세이 연구회 소속 참의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어[6] 파벌 내 결속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래 간사장에 임명될 경우, 자기 파벌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인사를 안배한다는 의미로 형식적으로 파벌에서 이탈하는 관례가 있으나 모테기 간사장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헤이세이 연구회에서 모테기가 이탈할 경우, 간사장 사임 이후에도 모테기가 다시 복귀하지 못할까봐 파벌에서 탈퇴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다. 그만큼 자신의 파벌에서 인기가 없는 듯 하다. 이렇게 되면 모테기가 총재선거에 출마했을 경우, 파벌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총리직을 노리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2022년 9월 4일,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NHK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9월 둘째주 중으로 통일교와 연관된 자민당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9월 8일, 현재 자민당 내 국회의원 379명 중 179명이 통일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모테기 간사장은 “무겁게 받아들이며 솔직하게 반성한다.”라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문제와 통일교 게이트로 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율이 여론조사에 따라 레임덕 상태로 평가받는 20%대까지 급전직하하자 '포스트 기시다' 후보군으로 언급되고 있다.# 다만 앞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당내에서 인망이 없다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큰 난관.[7]
물론 차기 주자로는 고노 다로, 고이즈미 신지로 등과 함께 계속 거론되고 있고 문벌 정치인 가문 출신이 즐비한 자민당 내에서 개성있고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에 파벌관리 역량에 따라서 총리주자의 위상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5월 1일, 미국의 제이크 설리번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하여 역내 안보 환경과 미일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했는데 포스트 기시다 자리를 노리는 나름의 독자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4년 총재 선거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당 총재직 연임에 나서면 입후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기타[편집]
- 매우 터프한 협상가로 알려졌다. 외무대신에 발탁된 것도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보여준 능력을 아베가 높게 샀기 때문. 모테기가 ‘외교를 통해 일본을 생각하고자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외무대신 자리를 희망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그래서 모테기는 ‘유도형 외교’라는 나름의 외교철학을 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의하면 그는 2003년 출간한 ‘일본외교의 구상력’를 통해 유도형을 설파하는데 구체적 외교방침으로 “상대 흉중에 뛰어들어 서로 밀고 당기는 유도와 같은 관계”를 제창한다.
- 일본 정계 거물 중 자수성가한 보기 드문 케이스로, 학력과 이력 모두 출중하며 머리 좋고 일 잘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나[9] 냉담한 성격과 특유의 완벽주의 탓에 인망이 좋지 않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10] 그의 파벌인 헤이세이 연구회의 후배 의원들에게도 엄격하며, 당료나 관료 할 것 없이 주변에서 그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정책통 의원으로서 관료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호통을 치는 성미에 더해, 의전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여 관료들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잘 모시기 위한 모테기 대책 매뉴얼까지 만들어놨을 정도라고 한다.[11] 일부 언론은 그러한 명성으로 인해 그에게 ‘사신(死神)’이라는 용어를 쓴다. 모테킹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왕처럼 군다고 하여 생긴 것으로 당연히 모테기+King의 합성어이다. 그에 대한 공통되는 평가가 능력은 좋지만 인망은 미달이며 갑질을 잘한다는 것. #
- 그럼에도 외무성이 아베 총리가 경제산업성과 더불어 신임하며 힘을 실어주는 실세부서이며 특히 모테기를 아베 총리가 매우 신뢰하는 만큼[12] 앞으로도 아베 내각이 유지되는 한 주변 이목이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아베 내각이 끝나고 스가 내각이 들어섰을 때에도 유임됐으며, 외무대신이라는 중요 포스트를 맡으며 위상이 높아져 총재선에 출마를 타진해 볼 정도가 되었다. 특히 헤이세이 연구회의 다케시타 와타루 회장이 식도암 투병 중 사망하고 후임 파벌 회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다케시타 회장이 암 치료로 부재하던 시기부터 쭉 회장대행을 맡아 파벌 운영을 관리해온 모테기라, 다음 총재선엔 한 파벌의 영수로서 진지하게 총리대신을 노려볼 수도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파벌의 원로인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과 견원지간이라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 아직 회장에 취임하지 못한 상태이지만[13] 현실적으로 모테기가 곧 회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1년 11월부로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함에 따라, 다나카 가쿠에이가 말했던 총재의 조건[16] 은 모두 클리어했을 정도로 요직을 많이 맡았다.
- 2020년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시청했다고 한다.#. 한국드라마를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으로 2020년 10월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도 "웬만한 한국드라마는 다 봤다"라고 말했다.기사 해당 인터뷰는 스가 내각의 외교 정책에 대한 것으로 모테기는 강경한 대한외교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주제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면 상당한 광으로 보인다.
- 아키히토 재위 시절인 2017년에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으로 임명된 이후로 국무대신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없었던 고로[17] , 아키히토 명의의 임명장을 받은 국무대신 중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대신이 되었다.[18]
6. 둘러보기[편집]
[1] 원래 '원자력 손해배상 지원 기구'라는 직책이었으나, 2014년 8월 18일부로 본 명칭으로 변경되었다.[2] 차차기로는 후쿠다 다쓰오 등이 거론된다. 만약 후쿠다 다쓰오가 당선되면 조부 후쿠다 다케오 - 부친 후쿠다 야스오에 이어 일본 최초로 3대 총리를 배출한 세습 정치인 집안이 된다.[3] 현재는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명예교수와 고려대학교 명예객원교수를 맡고 있다.[4] 이 헤이세이 유신회 출신 정치인 중 한명이 바로 나가츠마 아키라 前 후생노동대신이다.[5] 물론 석패율 비례대표로 부활하긴 했으나 선거 총지휘자인 간사장이 자기 선거도 제대로 못 치른 건 언어도단이다.[6] 실제로 참의원 내 헤이세이 연구회 의원들은 후나다 하지메 전 경제산업청장관을 파벌 영수로 밀기도 했다.[7] 실제로 아베 총리 시절 차기 총리 후보 여론조사 1위를 질주하던 이시바 전 간사장이 끝내 아베가 세운 반 이시바의 견고한 방벽을 넘어서지 못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8]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9] 산케이신문에서는 지식과 두뇌 회전 속도, 명쾌한 설명 능력은 당내 제일이라고 해도 좋다고 논평했다.[10] 의원이 되기 전 그는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 근무한 바 있는데, 해당 항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처럼 냉철하고 완벽한 일처리 및 사고방식, 태도를 갖추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직장이다. 아마 이곳에서 일하며 체득한 태도가 일반인들에겐 거리감이 느껴지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11] 적절한 실내 온도부터 준비할 영양 음료와 생수(에비앙), 특히 골초인 그를 위해 어딜 가든 흡연 장소를 찾아 놓는 것.[12] 그동안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반자라 불리웠던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과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언론에서 공공연히 보도할 만큼 경산성 및 외무부와 아베 총리의 밀착도가 높아졌다. 더욱이 모테기는 이전 경산대신을 맡은 바 있다.[13] 아오키는 파벌의 회장이었던 오부치 게이조의 딸 오부치 유코에게 파벌을 넘겨 오부치파의 부활을 꿈꾼다는 분석이 있다. 아오키는 오부치의 와세다대학 선배이며 오부치가 총리 재임 중 혼수상태에 빠지자 관방장관으로서 총리 대행까지 맡았을 정도로 오부치의 최측근이었다.[14] 現 재무대신[15] 現 경제산업대신[16] 대장대신[14] , 외무대신, 통상산업대신[15] 중 두 가지 이상. 당직은 간사장은 필수로 그 외에 총무회장이나 정조회장 중 하나 이상.[17] 나루히토 즉위 이후에 아베 신조 전 총리에 의해 외무상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기존 국무대신으로서 타 국무대신 자리로 전보된 것이므로 천황의 임명장을 받지는 않았다.[18] 같은 이치로 스가 요시히데 및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임명장을 받은 적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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